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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본 메타버스

by coconut wood 2022.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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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무엇인가?

 

우리는 메타버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심하게 풍긴다.

잘 모르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메타버스를 잘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 비해 인프라가 발전하지 못한 곳에 오래 살다 보면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IT 인프라가 세계적으로도 탑티어에 속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한 게임 라이프

20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어느 날 한국에 출장을 갔다 온 동료가 컴퓨터 외장형 저장장치를 하나 내밀었다.

이렇게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나의 메모리 문제도 있겠지만 1세기 전의 일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아무튼 USB 같은 심플한 기기는 없던 시절이었다. 주로 사용했던 것이 플로피 디스크였으니 아마 그것이었으리라.

동료의 말로는 요즘 한국에서 뜨는 신규 게임의 체험판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도 그리 크지 않은 용량이었다. 그때는 게임 하나에 플로피 디스크가 여러 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플로피 디스크라는 것이 읽다가 에러 나는 경우도 있어 설치할 때마다 극한의 긴장감을 주었다. 아무튼 그 게임의 이름은 스타크래프트였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일이다. 한국에서도 게임을 하려면 PC방을 갔던 시절이었다.

현지에서 게임을 하려면 그나마 현지에서 가장 발달한 인터넷을 가지고 있었던 회사 밖에 없었다.

그것도 다른 곳에 사는 누구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내의 인트라 넷으로 연결하여해야 했다.

한국에서 출장 온 사람은 모두 하루 일과가 끝나면 틈만 나면 인트라 넷에 연결해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사람과 사람이 겨루는 게임이다. 컴퓨터 하고만 게임을 한 사람과 실력 차이는 컸다.

그리고 한국에서 게임 경기를 보며 여러 전략을 알고 있는 사람과 현지에서 혼자 놀던 사람의 차이는 프리미어 리그와 조기 축구회 정도의 격차였다. 그 후 한국에서 누가 오기만 하면 게임을 하자고 졸랐다. 컴퓨터와 하는 게임에 비해 사람과 하는 게임은 비교가 되지 않게 재미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의 게임은 실력의 차이로 성립이 되지 않았고 그 이후 주로 싱글 플레이 위주의 게임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그 시절 많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와 그나마 밖에서 술 마시는 시간을 줄이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게임이라는 것이 개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시간 때우는 데에는 독보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다.

현지에서 게임을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현지의 수요가 많지 않았다. 게임을 하려면 컴퓨터가 있어야 하는데 컴퓨터 보급률이 한국에 비해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 회사의 사무실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었다. 이후 현지에서도 점차 보급률이 올라가 우리의 용산전자상가와 같은 곳이 생겼다. 건물 전층이 컴퓨터나 전자기기를 팔았고 그중 한 층에서 게임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팔았다. 99.9%가 복제품이었다. 0.1%는 정품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본 적은 없었다. 그때는 인도네시아에 저작권 관련 협정이 없었는지 몰라도 버젓이 복제품을 파는 것이 현지의 현실이었다. 이후에는 정품도 팔았지만 이미 게임은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시절이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PC방 비슷한 것이 생기긴 했지만 우리나라처럼 발달하진 않았다.

일단 인터넷 속도가 형편없기 때문에 보통은 회사의 인터넷 속도나 가정의 그것이 훨씬 좋아서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현지 마을에는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 몇 대를 두고 장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예전 한국에서 문방구 앞에서 작은 게임기 앞에 어린이들이 쪼그려 앉아 게임을 하던 풍경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2022년의 발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인터넷 속도는 조사대상 140개국 중에 100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서도 캄보디아보다 바로 위에 있을 정도이다.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도가 중요한 것이지만 현지에서 몇 기가 되는 용량을 다운로드하려면 밤새 다운로드를 걸어 놓아야 할 정도였다.

 

기술의 발달

 

기술은 상상 이상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 몸이 따라 주지 못하는 것을 실감한다.

처음 한국에 컬러 TV가 출시되었을 때였다. 아니 우리 집이 컬러 TV를 샀을 때였을 것이다.

우리는 영상을 컬러로 본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마치 처음으로 영상을 컬러로 보는 것이라 우리는 착각했다.

이미 영화관에서 컬러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었다.

TV 기술은 계속 발전해, 특히 고품질 영상 기술은 제품의 홍보 수단으로 제일 앞세우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눈의 노화는 계속되어 그 고품질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상기술은 계속 발전했지만 우리가 보며 느끼는 영상의 품질은 계속 그대로인 것이다. 이 상황은 청각을 사용하는 음향도 마찬가지이다. 현지에는 예전에 한국인 전용의 비디오방이 있었다. 그곳에서 보는 것은 아니라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대여해 주는 곳이었다. 드라마 같은 것은 수십 개를 대여해 쌓아 두고 봐야 했다. 한국에 대한 영상을 접할 곳이 없었던 시대였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영상에 대해 굶주려 있었다. 하긴 현지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접하기 어려운(?) 영상을 비디오 대여점에서 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넷플릭스만 봐도 볼 게 너무 많아 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든 다큐멘터리등 한 편을 다 보기엔 시간이 없다. 유튜브에서 짧게 요약한 영상을 보게 된다. 접하는 정보량이 이전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아졌다. 문제는 그래서 더 똑똑해졌냐면 그건 아니다. 도대체 왜 보는지 모르겠지만 본다. 우리는 왜 하는지 모르고 하는 것을 중독이라고 부른다. 정보에 중독되었냐면 부정할 수가 없다. 어쩌면 기술에도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의 강림

 

인도네시아에 휴대폰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휴대폰이 없으므로 집에서 전화를 써야 했다. 집 전화로는 국제 전화를 직통으로 걸지 못하였다.

지금처럼 국가 번호를 누르고 시작하는 그런 통화가 안되었다. 전화 교환원을 통해야 했다.

교환원에게 전화를 걸어 원하는 국가와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연결해 주는 구조였다.

문제는 전화번호를 현지어로 읽어줘야 했는데 현지어가 익숙지 않아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그것을 보고 불러줘야 했다.

예전에 한국의 공중전화에 있었던 수신자 부담의 콜렉트콜 같은 방식이었다.

그리고 벽돌폰이라고 불렸던 크기의 휴대폰이 나왔다. 그 크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 중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무선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에릭슨에서 인간이 들고 다닐만한 휴대폰이 나와 우리를 유혹했다.

에릭슨과 모토로라 등은 초창기 휴대폰 업계에서 잘 나갔다. 이후 현지에서 사업한다는 사람은 블랙베리를 모두 들고 다녔지만 모두에게 대세는 아니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나오며 세상은 변했다. 이런 것을 게임 체인저라고 할 것이다.

 

스마트폰은 모든 것을 바꿨지만 그중 현지에서 가장 실감하는 사례를 말하겠다.

 

현지에는 오토바이 택시가 있다.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는 길거리에서 오토바이를 잡아야 했다.

잡는 자나 잡히는 오토바이나 서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냥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고객인지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고객이 맞다고 해도 목적지가 기사가 원치 않는 곳이면 승차거부를 하기도 했다. 이건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일반 택시도 발생하는 일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따라 요금을 협상해야 했다. 협상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은 일반인의 경우 짜증도 나고 경우에 따라 바가지요금을 쓰고 욕을 한 바가지  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외국인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신이 강림한 후 우리는 어플을 통해 가장 가까운 곳의 오토바이 기사를 부른다. 기사는 이미 목적지를 알고 확인했기에 이전에 있던 승차 거부도 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요금 협상도 없어 감정적 소모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가끔 오토바이 기사가 무조건 확인을 눌렀다가 목적지를 보고 캔슬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승객의 운행뿐 아니라 스마트폰은 택배도 활성화하였다. 현지인은 외식을 즐겨하는데 사실 집에서 밥을 잘해 먹지 않았다. 보통 집 앞 가까운 식당에서 사 먹거나 사서 집에서 먹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서 요리를 하면 덥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사 먹는 것이 싸게 먹히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음식 택배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리고 현지에서도 서비스 제공 회사는 엄청 난 투자를 하기에 공짜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기회도 자주 주어진다. 

 

스마트폰이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살까 말까 망설이던 물건이 있다면 이전에는 직접 방문해야 했기에 구매를 미루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방구석에서 모든 과정을 처리할 수 있다. 현지에서도 그나마 도시에 산다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물건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도시가 아닌 시골에 산다면 상황은 천차만별로 나뉠 수 있다.

기사가 가지 않거나 없는 지역이면 스마트폰이라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 번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상가가 있어 오랜만에 걸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사러 간 적이 있었다.

사실 물건을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외에 사 본 적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단언하건대 스마트폰을 이용한 구매가 훨씬 쉬웠다. 이렇게 인간은 디지털화되어 가나 보다.

메타버스가 일상화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휴대폰으로 하는 구매를 머리에 뭔가 뒤집어쓰고 가상 공간에서 하는 것인가?

메타버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미래 학자도 앞으로 벌어질 일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해 보이는 것이 있다.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 세상에서 태어나 디지털 세상에서 죽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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